※ “2 대 1로 하면 더 안전하니까 요즘에는 친구랑 같이 많이 해요.”
15살 소연(가명)이는 매일 저녁 홍대입구역 경의선 책거리 광장에 나온다.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나 틱톡 영상을 찍거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성매매할 남성을 구한다. 연락이 오는 상대는 보통 30~40대 남성이다. 모텔, 차에서 하는 성매매가 가장 많고 공중화장실, 룸카페나 남성의 집에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눈 감고 하면 할 만해요.” 소연이는 최근에는 친구와 함께 성인 남성을 만나 2 대 1로 성매매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혼자서 성매매를 하면 평균 35만원, 친구와 함께 하면 각각 15만~20만원씩을 받는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이렇게 성매매를 하고, 한 달에 150만원 정도를 번다. 5만~6만원짜리 ‘간단’ 성매매도 있다. 가출한 이른바 ‘지뢰계’ 아이들 중 상당수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몰래, 혹은 친한 친구와 함께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것이 소연이의 말이다.
소연이가 성매매를 하는 이유는 ‘지뢰계’ 옷을 사기 위해서다. 지뢰계는 일본에서 건너온 단어로 ‘밟으면 터지는 지뢰 같은 여자’ ‘귀여운 겉모습과는 달리 막상 가까워지고 보면 정신상태가 불안한 사람’을 일컫는다. 화려한 블라우스에 A라인 치마, 작은 가방, 높은 통굽 구두 등 순정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차림이 이들의 특징이다. 이날도 소연이는 7㎝짜리 통굽 구두와 코르셋,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15만원을 주고 직접 산 옷이라고 했다. 소연이는 이 옷을 입고 일본 지뢰계의 춤 동작, 율동 등을 따라 하는 틱톡 영상을 친구들과 찍어 올린다.
※ ‘지뢰계’ 패션 사려고 성매매하는 아이들
‘지뢰계’ 사이에서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6번출구 인근의 경의선 책거리 광장은 ‘멘헤라공원’으로 통한다. 멘헤라는 ‘정신건강(Mental Health)이 좋지 않은 사람’을 일컫는 일본식 신조어로 우울증, 경계선 성격장애, 지뢰계, 멘탈이 약한 사람을 포괄한다. 경의선 책거리 근처에는 AK 홍대점 등 일본 애니메이션 관련 굿즈를 파는 곳이 많기 때문에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이곳에 모이게 됐고, 최근 일본의 ‘도요코키즈’(가정폭력 등으로 인해 도호 시네마즈 옆 광장 근처에서 노숙을 하거나 거리를 배회하는 가정 밖 청소년)를 따라 하는 가정 밖 청소년과 지뢰계 등 멘헤라의 숫자가 많아져 멘헤라공원이 됐다. ‘멘헤라’들은 화려한 복장으로 이곳에 모여 트위터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친목을 도모하고 틱톡을 찍는다. 기자가 직접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지난 10월 14일 토요일에는 약 30여명, 10월 16일 월요일에는 약 15명의 멘헤라가 경의선 책거리를 찾았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청소년들이 노란색·핑크색 가발, 커다란 리본, 무릎까지 올라오는 레그워머 등의 차림으로 벤치에 앉아 화장을 고치거나 가방을 거치대 삼아 휴대폰을 세워두고 틱톡 영상을 찍고 있었다.
최근에는 ‘멘헤라’들뿐 아니라 아닌 일반인 남성들도 이곳을 찾고 있다. 소연이와 같이 성매매를 하는 ‘멘헤라’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10월 둘째 주 디시인사이드 등 커뮤니티를 가장 뜨겁게 달군 건 13세 초등생이 담배 두 갑을 받고 데이트를 해준 일명 ‘멘헤라공원 담배 두 갑 사건’이었다. 전자담배 사진과 함께 “이거 받음. 밥 사주고 담배 사 주고 착함. 그래서 만남”이라는 대화 내용을 캡처한 사진은 삽시간에 여러 커뮤니티로 퍼졌고, 한 유튜버는 직접 경의선책거리를 찾아 해당 아이들을 인터뷰해 화제가 됐다. 지금도 ‘우울증 갤러리(울갤)’ 등 온라인 커뮤니티엔 “애정 결핍이 심한 미소녀 멘헤라 만나고 싶다”와 같은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앞서의 소연이도 “5일 전 이곳에서 헌팅을 통해 일반인 남자친구를 사귀었다”고 말했다. 20대 후반의 남성은 해당 유튜브 영상을 보고 경의선책거리를 찾아 자신을 미성년자로 속이고 소연이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소연이는 그 남성이 ‘잘생겨서’ 사귀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남성은 계속해서 스킨십을 요구했다.
가출한 지 3박4일째라는 소연이에게 저녁을 사주겠다고 하자 “같이 가출한 친구들이 기다려서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가자고 하니 “마침 다 같이 돈이 떨어졌는데 감사합니다”라며 웃었다. 소연이와 친구들은 저녁을 먹으며 파티룸을 예약했다. 파티룸은 오늘밤 이들이 묵을 숙소다. 이들은 미성년자가 밤에 출입이 가능한 파티룸, 댄스연습실 등을 대여해 다 같이 잠을 잔다고 했다. 아이들은 ‘지난번에 파티룸 화장실에 있는 손 세정제로 세수를 하고 몸을 씻었다’며 깔깔 웃었다. “1만6000원 괜찮아?” 1인당 부담금을 계속해서 낮춰가며 파티룸을 찾던 소연이와 아이들은 결국 1만2000원에 합의를 봤다. 이들은 돈이 다 떨어지면 트위터에서 ‘재워줄 사람’을 찾다가 답장이 오는 낯선 사람의 집에 가기도 한다고 했다.
이들이 가출한 이유가 궁금했다. 포크로 떡볶이를 찍는 지윤(가명·16)이의 손목에는 자해자국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팔뚝까지 이어지는 상처에는 붉게 부풀어 있는 자국도, 벌어진 채로 아물어버린 자국도 있었다. 지윤이는 자해를 왜 어떻게 했는지 그 순간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지윤이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평소 지윤이와 자주 대화했지만 술을 먹은 날에는 지윤이를 때렸다. 패션 관련 학과가 있는 특수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반 친구들이 지윤이를 괴롭혔다. 지윤이는 3년 내내 이들과 같은 반에서 지낼 자신이 없어 학교를 나가지 않고 있다. 지윤이는 자신의 학과에 대해 “적성에 맞고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효(가명·13)는 우울증으로 입원, 복약, 상담치료를 해왔다. 아빠는 1년 전까지 걸핏하면 지효의 신체 이곳저곳을 폭행했다. 지효는 집에 있으면 아빠에게 들은 욕설이 떠올라 기분이 더러웠고, 끝내 가출을 했다. 지효도 사고 싶은 지뢰계 옷이 생길때마다 ‘간단’ 성매매를 한다.
알게 된 지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이 아이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홍대 거리를 걷는 뒷모습에서 서로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이들은 틱톡을 하는 이유에 대해 “관심받는 게 좋아서, 유명해지는 게 좋아서”라고 말했다. 사람들로부터 손쉽게 관심을 얻는 수단으로 틱톡, 트위터, 랜덤채팅 등을 이용하고 여기에 의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소연이의 다리 곳곳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10개 넘게 곪아 있었다. ‘술을 먹다가 굴러서’ 생긴 상처란다. 소연이는 성매매를 하는 남성을 통하거나 주민등록증 확인을 하지 않는 가게에서 술·담배를 산다. 저녁 7시를 넘어가자 멘헤라공원을 찾는 ‘지뢰계’들이 더욱 많아졌다. 이들은 공원 구석구석에 모여 숨어서 담배를 피웠다.
※ 밤늦게 공원서 자해… 마약 위험도
이곳에서는 자해 소동도 종종 일어난다. 지난 6월 멘헤라 여성 청소년 두 명이 이곳에서 바닥에 피가 흥건해지도록 자해를 했고, 경찰이 출동했다. 지난 10월 16일 저녁 한 지뢰계 여성은 광장 중앙 벤치 앞에서 약에 취한 듯 계속해서 웃으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여성의 친구는 그 여성을 두고 ‘오버도즈(약물 과다복용)했다’고 말했다. 경의선 책거리를 관할하는 홍익지구대는 “이상동기문제(칼부림 범죄)가 발생한 날로부터 순찰을 강화하기는 했지만 특별히 (멘헤라 범죄와 관련해) 순찰을 강화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들 사이에 사이버불링(온라인 괴롭힘)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는 듯 보였다. 지윤이는 다른 멘헤라 무리가 멘헤라공원에서 자신을 몰래 촬영한 사진과 함께 비하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계속해서 리트윗(공유)한다고 호소했다. 순찰을 돌고 있는 경찰에게 사진 찍는 멘헤라 무리들의 행위를 제지해달라고 말했으나 제대로 된 주의조치조차 없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최근 지윤이는 해당 무리와 실제로 몸싸움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물론 취미활동으로 지뢰계 패션을 즐기고 멘헤라공원을 찾는 이들도 있다. 현주(15·가명)는 주말에 멘헤라공원에 오기 위해 평일 동안 열심히 공부한다. 오후 2시에 혼자서 틱톡을 찍으러 멘헤라공원을 찾은 그는 평균 10개의 틱톡 영상을 한꺼번에 찍어간다고 했다. 그는 평범한 복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가 지하철역에서 챙겨 온 지뢰계 패션으로 갈아입는다. 학교 친구들, 동네 친구들에게는 들키기 싫은 취미활동이기 때문이다. 최근 어학연수를 다녀왔다는 현주는 평균 90점 이하로 성적이 떨어지지 않으며 특수목적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부모님도 이러한 취미생활을 인정해주고 가끔 지뢰계 옷을 사주시기도 한다. “최근 커뮤니티에서 퍼진 글들 때문에 멘헤라 문화 전체가 욕먹고 있는 게 화가 나요. 저처럼 건전하게 취미활동으로 즐기는 친구들도 많아요.” 현주는 지뢰계 자체가 부정적이지 않으며 자신은 지뢰계 패션과 틱톡 등의 문화만 소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뢰계 패션이 우울증을 앓는 여성을 콘셉트로 한 만큼, 청소년들이 지뢰계 특유의 허무주의와 우울함 자체에 취해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많아 보였다. 가출한 지뢰계 청소년들은 공통적으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부모님이 자신을 포기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트위터 게시글에도 ‘#우울계’와 ‘#지뢰계’가 섞인 해시태그가 많았다. ‘패션우울증’이라는 신조어도 이들 사이에서 유행이다. 우울증을 관심받기 위한 패션 수단처럼 여기고, 일부러 우울함을 장착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기 때 어땠는지 상상해보라. 경계 없이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고 관계를 맺는다. 주변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고 또래 문화에 취약하다”고 청소년기의 특징을 설명했다.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던 인터뷰 영상에서 두 명의 지뢰계 아이들은 장래희망에 대해 각각 “없다” “호스트바에서 비싼 돈 내면서 샴페인 시키는 여자”라고 답했다. 그러나 기자가 똑같은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다시 묻자 각각 “직장 다니면서 토끼랑 고양이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장래희망은 없고 미래에 되고 싶은 것도 없다”고 답했다.
[출처]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
권아현 기자/ 2023.10.20.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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