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소요산 입구에는 성병관리소가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군을 상대했던 미군위안부들의 성병을 관리하던 곳.
미군의 사기진작을 위해 한국 정부가 미군 위안부의 성매매 활동을 도왔고, 한 발 더 나아가 미군 위안부들을 강제 격리 수용했던 곳. 미군 위안부라는 명칭도 당시 정부가 공식적으로 붙인 것입니다. 당시 미군들은 성병관리소를 몽키하우스라고 불렀습니다. 철창에 갇힌 여성들의 모습이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같다며 붙인 별칭입니다.
분단의 아픔과 미국의 군사 지원, 그리고 타국의 군인들을 위해 성매매 여성들의 건강 상태까지 강압적으로 관리한 한국 정부의 모습. 미군이 말한 몽키하우스라는 단어가 이 모든 상황을 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동두천하면 많은 사람들은 미군 기지촌을 떠올립니다."
성병관리소를 취재하며 만난 한 취재원의 말입니다. 그리고 성병관리소를 둘러싼 갈등을 관통하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지역 시민단체는 성병관리소를 보존해 역사인권박물관으로 조성하자고 주장합니다. 국민이 국가로 부터 보호 받지 못한 아픈 역사, 그 역사를 후대에게 알리는 장소로 활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반면 일각에서는 "뭐 좋은 역사라고 보존하냐. 그냥 철거하자"라고 반박합니다. 성병관리소를 보존하면 기지촌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리는데 방해가 된다는 겁니다.
아픈 역사를 보존하느냐 아니면 지워버리느냐. 두 가지 명제가 대립합니다. 그런데 최근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동두천시 옛 성병관리소 보존과 활용 토론회'를 눈여겨볼만합니다.
토론회에서는 성병관리소를 인권박물관으로 조성해 동두천 지역의 역사적 장소와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단순히 철거냐 보존이냐,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지역 관광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 겁니다.
이럴 경우 '철거와 보존'에서 '철거와 활용'으로 논의 주제가 바뀝니다. 크게 달라진 것 없다고요? 아닙니다. 기존에는 단순히 철거와 보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주제였다면, 후자는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한 최적의 대안을 찾는 것이 주제입니다.
'소요산과 성병관리고 그리고 다크투어리즘' 기획 기사를 준비한 것도 바로 '최적의 대안'을 찾자는 공감대에서 시작했습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소요산 상인들의 핵심 요구 사항은 "어떻게 해서든 지역 상권을 살려달라"였습니다. 그리고 성병관리소 역시 지역 관광 콘텐츠에 도움이 된다면 보존해 박물관으로 조성하자는 입장도 상당 수 였습니다. 물론 기지촌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철거를 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었지만 일방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4월 시민단체가 성병관리소를 보존하자고 기자회견을 열 당시만 해도 소요산 상인들의 입장은 철거로 기우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주제가 관광 활성화로 바뀌자 상황이 변한 겁니다.
지금까지 동두천시는 성병관리소 보존 여부와 관련해 단 한 차례도 지역 사회와 논의를 한 바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기지촌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동두천시가 이미 내부적으로 철거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습니다. 물론 동두천시의 공식 입장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입니다. 현재 동두천시는 소요산을 포함한 주변 지역의 관광 활성화를 위한 용역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용역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관광 활성화 방안을 구상할 계획입니다.
기획 보도 이후 지역 시민단체는 동두천시에 공식적으로 논의 테이블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무조건 보존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지역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될지 진지하게 이야기 해보자는 게 시민단체의 요구입니다. 어떤 결정이 답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적의 답안을 도출하기 위해 지역 사회가 머리를 맞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논의를 해야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남은 시민들이 호응하고 응원을 해줄 수 있습니다.
지역 발전을 전제에 두고 끊임 없이 논의하고 노력하는 것, 기초지자체의 역할입니다. 이제는 동두천시가 응답을 할 때입니다.
[출처] LG헬로비전(http://news.lghellovision.net)
이재필 기자/ 2023.07.05.
http://news.lghellovision.net/news/articleView.html?idxno=42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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