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던 지난 4일 새벽. 서울 소재 한 고시원에서는 공동 취사실에 숨어들어 냉장고를 뒤적이던 10대 소년이 발각됐다.
밥이나 라면 등을 몰래 훔쳐 먹으러 들어온 18세의 가출 청소년이었다.
고시원 총무 김모(30)씨는 “이전부터 냉장고의 개인 식품이 없어진다는 원생들의 신고가 자주 있었는데 가출 청소년의 짓인지는 그때야 알게 됐다”며 “‘제발 경찰에 신고만은 하지 말아달라’며 애걸복걸하고 날도 추운 탓에 측은한 마음이 들어 라면과 밥을 먹여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11일 서울지역에 폭설과 함께 시작된 한파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들의 보호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겨울에 접어든 이후 추위와 배고픔을 참지 못한 가출 청소년들의 절도나 성매매와 같은 각종 범죄 소식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14~19세 청소년 가출 신고는 총 1만5118명으로 남자가 5253명, 여자는 9865명이었다.
가출 경험율을 토대로 추정하면 실제 가출 청소년은 경찰에 보고된 수의 10배 정도 규모로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가정과 학교로 복귀하는 청소년을 제외하면 6~7만명의 청소년이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들 가출 청소년들은 피씨방이나 찜질방 등을 전전하다 돈이 떨어지면 건물 계단이나 화장실, 아파트 지하실 같은 곳에서 노숙하기도 하는데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지 못해 절도나 강도 같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성매매를 강요받기도 한다.
지난 2일에는 충북 청주에서 10대 청소년 4명이 한밤중에 편의점을 돌며 강도짓을 하다가 붙잡혔으며, 전남 광주에서는 집을 나온 10대 형제 두 명이 상습적으로 절도행각을 벌이다 경찰에 잡히기도 했다. 형(17)은 고교 중퇴였고 동생(15)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여자아이들은 주로 성매매에 쉽게 노출된다.
지난달만 해도 채팅을 통해 만난 남성들과 성매매를 하거나 최근에는 10대 가출 소녀와 돈을 주고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인기가수가 입건됐으며, 부산에서는 가출한 17세 소녀를 협박해 남성과 성관계를 갖도록 강요하고 화대 200만원을 갈취한 혐의로 한 20대 남성이 입건되기도 했다.
가출 청소년을 임시로 보호하는 쉼터 입소 청소년 중 가정과 학교 복귀율은 40%대에 머물고 있다.
김효정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간사는 “겨울이면 쉼터를 찾는 아이들이 여름에 비해 늘어난다”며 “장기간 가출을 경험한 청소년들은 영양상태가 부실하거나 노숙으로 인한 비위생적인 생활로 피부병이나 성병 등의 신체적 질환과 우울증, 정서불안 등의 정신적 질환 증세를 보인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ryupd01@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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