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취약지구 예방이 최선" 비번자들 年4회 자발 점검
28일 오전, 수도권 최대 집창촌 중 하나인 경기도 평택의 속칭 '삼리'(평택동 55번지 일대)에 검은 제복 차림의 30여명이 나타났다. 전면 유리가 훤하게 드러난 성매매 업소 150여곳이 다닥다닥 붙은 이곳에는 아직도 분홍색 형광등을 켜고 영업하는 업소가 적지 않았다. '폐업' 종이를 붙여놓은 곳도 세 집에 한 집꼴이었다.
영업 중인 업소 40여곳을 조를 나눠 일일이 방문한 이들은 불법 영업을 단속하는 경찰이 아니었다. 근무가 없는 날을 활용해 성매매 업소의 난방기와 소화기 작동 상황을 점검해주러 온 평택소방서 소방관들이었다.
삼리의 업소들은 화재에 취약한 조립식 건물들로 이뤄져 있다. 각각 여성 5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0년 9월 군산 대명동 집창촌 화재와 2005년 3월의 서울 하월곡동 '미아리 텍사스' 화재…. 잊을 만하면 발생했던 집창촌 대형 화재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소화기 눈금이 녹색을 가리키고 있죠? 그럼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소화기를 체크할 땐 항상 여길 살피세요."
심근형(42) 예방과 팀장이 검은 옷과 긴 부츠를 입고 아침부터 유리문 안에 앉아 있던 한 여성에게 일러줬다.
유리창 안으로 복도 양옆에 '101'부터 '105'까지 번호가 붙은 방 다섯 개와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곰돌이 푸가 그려진 베개, 달 모양의 방석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방을 둘러보는 심 팀장의 시선이 복잡하게 뒤얽힌 전기 코드와 배선에 꽂혔다.
"전자제품이나 전열기의 과열이 문제죠. 그런데 요즘은 사람이 제일 무섭습니다. 집창촌에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 만취 상태잖아요."
불법 성매매 지역으로 경찰의 집중 단속이 이뤄지는 곳이라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맞는 업주와 성매매 여성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소방관들은 한층 살갑게 다가서려 애썼다. 이들이 가게마다 나눠준 A4 용지에는 그림과 함께 화재 안전수칙이 인쇄돼 있었다. '문어발식 콘센트 사용을 자제합시다' '고정식 난로를 씁시다' '영업을 마친 다음에는 전원을 꺼 화재를 막읍시다'….
평택소방서는 1년에 네 차례 삼리 지역에서 이런 소방 점검 활동을 벌인다. 소방서 관계자는 "비번자들이 화재 예방활동을 해야 한다고 정한 규정은 없지만, 오래전부터 해 오던 활동"이라고 말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1년에 한 차례에 그쳤지만, 2005년 삼리 지역이 '준(準)화재경계지구'로 지정되며 1년에 4회로 늘렸다. 현행법은 '화재경계지구 안의 관계인에 대해 소방상 필요한 훈련 및 교육을 연 1회 이상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방대원들에게 삼리 방문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다. 격무에 지친 몸을 쉬고 가족과 달콤하게 보낼 수 있는 휴식 시간을 반납해야 하는 게 무엇보다 아쉽다. 평택소방서 이종찬(57) 예방과장은 "소중한 목숨의 희생을 막고 예방하는 우리 본분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이 무섭다는 걸 소방관처럼 잘 아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요. 화재 발생 전에 미리 대비하는 것, 그게 이곳 사람들은 물론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거든요."
|
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