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매매 피해여성의 깨진 내면 치유하는 '씨밀레'
“나도 꿈이 있어요.” 보리(가명)가 대답했다. “여기서 돈을 벌면 고향 산자락에 나물비빔밥 식당을 차리는 게 제 꿈이에요. 사실 엄마도 아빠도 다 돌아가시고 형제들도 뿔뿔이 흩어져 고향엔 아무도 없지만 제가 먼저 돌아가서 형제들도 하나 둘 불러올 거예요. 나도 자기들도 상처투성이 인생이지만... 이젠 남들처럼 살아보고 싶어요. 손님들을 맞아도 견딜 수 있는 건 그나마 이런 목표가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문득 제 현실을 보면 그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에 고만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돼요.”
옆에서 듣고 있던 우주(가명)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지난달에 간 수치가 높아져서 입원했을 때 할머니는 타지에서 고생하지 말고 이제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간 수치가 높아서 금방 피곤해졌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몸이 이러니 마땅히 일할만한 직장 구하기도 쉽지 않고 중학교 때 자퇴를 해서 내놓을 학력도 안 되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면 또 병원비를 벌기 위해 여기서 일을 해요. 일해서 번 돈은 빚 갚는 데 다 들어가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할머니와 함께 작은 반찬가게라도 열 돈을 모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요. 하지만 저도 보리 언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빠지면 우울해지는 내 자신이 너무 싫고 화가 나요.”
어쩌다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는 생략하겠다. 지독한 내용을 지면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우리 사회 일부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 밖의 폭력에 대한 분노로 말끔하게 글을 쓸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한 여성단체에서 보고된 사정은 더 아득하다. 정신지체로 일상적인 판단과 생활을 하기 어려운 친구가 계속된 성매매 강요와 착취로 장기적인 신경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제도적 맹점으로 입원 치료를 실행하기도 쉽지 않았다. 당사자가 거부하면 안 된다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인권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유다. 때문에 관련보호기관에서 신원보증을 하려 해도 법적 제한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입원 치료를 해도 증세의 호전과는 관계없이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병원 밖으로 내 보낸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금이 끊기기 때문이다.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발생하는 무책임과 사회적 방치는 또 어쩌려는지 궁금하다. 이런 경우 관련 보호기관에서 백방으로 노력하고 해결방법을 찾으려 해도 제도적 개선과 정부의 합리적 지원이 없는 이상 결국 이 여성은 거리를 떠돌며 성매매와 성폭력을 반복적으로 당하며 살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되고 폭력과 착취 속에 방치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환기가 시급한 시점이다.
지난 2007년에 기회가 있어 샌프란시스코의 Young Women's Development(여성단체)를 방문했었다. 이곳은 1993년에 세워졌고 한 중년여성이 거리에 나가서 성매매 피해여성과 직접 소통하며 시작되었다. 성매매와 마약, 폭행, 수감, 가정파괴, 육아의 실패를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여성들을 찾아가 매일 일상적인 생활을 함께한다. 함께 웃고 울고 농담을 하고 아픔을 나누며 상담과 치료, 또 다른 삶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간다.
놀랍게도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정부 관계자도 아니고 나와 같은 시민단체 활동가도 아니다. 그 분들과 똑같은 경험을 하고 그곳을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른바 ‘아는 언니’들이다. 이곳의 사무국장은 Marlene Scanchez씨인데 감옥에도 다녀왔고 거리의 여성들과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곳의 자원봉사자를 만나게 되면서 스스로의 문제를 자각하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원봉사를 시작하고 직원이 되고 무수한 경험을 쌓아 사무국장이 되었는데 그녀의 나이는 현재 27살이다. 놀라웠다.
이곳은 한사람의 개인을 돕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통해 사회의 편견과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을 훈련해서 공동체를 구성하고 리더가 되도록 지원한다.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가동해서 스스로 자기결정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사회정의에 대해서도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직업훈련도 재활훈련도 이러한 사회정의에 대한 인식이 낮은 상태에서 진행하게 되면 똑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상황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모호한 이상 언제든지 피해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는 철학과 문학, 역사, 미학, 논리학 등 기초 인문학으로 구성된 강좌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 여성들은 지속적인 학대와 억압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고독과 외로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으로 스스로 몰락해가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를 치유하지 않으면 다른 직업을 가진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한다. 앞에서 밝힌 보리와 우주의 경우가 그렇다. 미래에 대한 소박한 꿈이 있어도 내면이 깨져 있는 이상 자신이 처한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울산에서는 '씨밀레'에서 이와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교육,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우리 친구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존중하고 가꾸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아름답지 않은가, 그녀들의 역사는. '씨밀레'가 유쾌한 Herstory를 만들어가는 등대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울산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씨밀레' Herstory의 디딤돌이 되는 날이 오길 희망해 본다
이승진(울산시민연대 부장) / 2009-07-08
|
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