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지촌으로 꼽히는 경기도 평택시 '안정리 기지촌'에서 과거 미군들을 상대하다 지금은 할머니가 된 여성들이 현재 매우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당수 할머니들은 건강에 이상을 호소하고 있었으며 미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 대부분은 해외로 입양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안정리 기지촌은 1951년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K-6)가 들어선 이후 기지촌화가 진행됐으며 현재 60여명의 할머니가 거주하고 있다.
기지촌여성 지원센터인 햇살사회복지회가 14일 공개한 '평택 안정리 기지촌 여성 노인들의 상황'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한 55명 중 40명(72.7%)이 '건강 상태가 나쁘다'고 답했다. 이들 대부분은 고혈압과 신부전증 등 2∼3가지 만성질병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사는 할머니는 1명에 불과했다.
또 미군의 아이를 출산한 할머니 19명(34.5%) 중 16명(84.2%)은 자녀를 해외로 입양시켰다고 답변했다. 한 할머니는 조사단과 만난 자리에서 "70년대 김일성이 남한을 쳐들어오면 혼혈아 먼저 죽인다고 해 아들을 외국으로 입양보냈다"며 "당시엔 이 같은 소문 때문에 나처럼 해외로 자식을 입양보낸 뒤 슬퍼했던 사람이 많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안정리가 지난 5월 뉴타운 개발 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응답자 가운데 51명(92.7%)은 '대책이 없다'고 답해 개발이 본격화되면 쫓겨날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전세나 월세가 아닌 자신의 집에 사는 할머니는 3명(5.5%)에 지나지 않았다.
복지회 우순덕 대표는 "과거 기지촌 여성들을 두고 '달러 버는 민간 외교관'이라고 은연중 추켜세웠던 정부가 지금은 이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만들어진 '위안부특별법'처럼 기지촌 할머니들을 위해서도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대표는 오는 18일 '성매매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에서 주최하는 국제 심포지엄 '기지촌:국가 군대 그리고 여성'에서 이 같은 실태조사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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