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 초등학생 이혜진·우예슬양 살해사건의 범인이 한동네에 살고 있는 면식범으로 밝혀졌다. 2006년 서울 용산에서 발생한 허모양 살해사건과 지난해 제주도 양모양 살해사건도 모두 한동네 사는 ‘이웃 아저씨’들이 아동들을 상대로 저지른 끔찍한 범죄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한국판 메건법’인 청소년 성범죄자 신상공개제도를 지금보다 훨씬 강력하게 시행해야 아동 성범죄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신상공개제도는 범죄자의 인권침해이고 이중처벌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급증하는 아동 상대 성범죄=25일 경찰청에 따르면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강간과 강제 성추행 등 범죄는 2005년 738건, 2006년 980건에 이어 지난해에는 1081건을 기록해 해마다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세 이하 청소년 상대 성폭력 건수도 2005년 3784건에서 2006년 5159건, 지난해 5460건으로 늘었다. 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는 사례만도 매년 2500건에 달한다. 매일 평균 아동·청소년 7명이 성범죄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청소년위원회는 청소년 대상 성매수·강간·강제추행·성매매 알선 등의 성범죄를 예방하고 청소년 보호를 위해 2000년 7월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신상공개제도를 전격 도입했다. 청소년위는 2001년 8월 제1차 169명을 시작으로 13차 383명까지 현재 총 6519명의 신상공개 명단을 발표했다. 공개 대상은 이름, 나이, 생년월일, 직업, 주소(시·군·구), 범죄사실 요지 등이며 관보와 청소년보호위 홈페이지, 중앙청사와 16개 시도 본청 게시판에 공개됐다. 청소년위는 또 신상공개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신상정보 등록·열람제도’를 지난 2월4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에 따라 공개 대상자의 시·군·구 내에 거주하는 청소년보호자와 청소년 관련 교육기관의 장은 거주지역 내 성범죄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및 실제거주지 ▲직업 및 직장 등의 소재지 ▲사진 ▲소유차량 등록번호 등 상세한 신상을 관할경찰서에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
국가의 성범죄자 신상정보 등록관리기간도 5년에서 10년으로 늘었다. 또 성범죄자는 10년 동안 각종 아동·청소년시설의 취업이 금지되고 피해자 고소 없이도 수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신상공개는 제도 도입 이전의 기존 성범죄자들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아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개정된 ‘청소년 성보호법’이 지난달 4일 시행일 이후 범죄를 저질러 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만기 출소한 성범죄자만을 열람 대상으로 정했기 때문에 열람가능한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는 아직 단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범죄 예방 VS 피의자 인권보호=청소년 성범죄자 신상공개 찬성론자들은 무엇보다도 이웃에 사는 성범죄자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으면 성폭력 범죄에서 자녀를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얼굴 사진 등을 포함한 세부 신상정보 공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또 신상정보 공개를 둘러싼 평등권, 성범죄자의 인권침해, 이중처벌의 문제 등은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이미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입장이다.
◆법무부가 공개한 성범죄자 전자팔찌 견본.
헌재는 2003년 서울 행정법원이 청소년 성매매 혐의로 벌금형이 확정된 전직 공무원 A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제기한 위헌제청 사건에서 “신상공개제도가 개인의 인격권과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일반 국민에게 경각심을 줌으로써 유사한 범죄를 예방하고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성범죄자 신상공개제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재발이 우려되는 성범죄자가 이웃에 살고 있음을 경찰이 주민들에게 알리는 등 성범죄자 사후관리와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사진, 소유 차량 번호 등을 공개하는 것은 마땅하며 시민들이 좀 더 쉽게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상공개 반대론자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공개제도가 대상자의 인격권 등을 심하게 훼손하는 것에 비해 범죄 억지의 효과는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공개 대상자의 이중처벌이라고 주장한다. 범죄자의 인격권과 사회복귀 권리에 대해 다른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 신상공개라는 강력한 수단을 선택한 것은 과잉대응이라는 논리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세부정보 등록은 헌법 17조에 규정된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제한하고, 과잉금지의 원칙, 적법절차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포괄적 위임입법 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세부정보 등록제도의 요건에 ‘재범의 위험성이 인정되는 때’를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전용규 변호사는 “신상공개가 공익 실현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거나 약간의 기여는 있지만, 그 부작용이 큰 경우 그 수단의 선택은 합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며 “이성적이고 타당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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