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이 등장했을 때 원효대교를 지나는 사람들은 '혹시 괴물이 출현하지 않을까'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이 인기를 끌었을 때 화성 시민들은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밤에는 빨간색 레인 코트를 절대 입지 않았다.
대박 영화는 이렇듯 사회 곳곳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또다시 세상을 들썩이게 하는 영화가 등장했다. 지난달 14일 개봉한 영화 '추격자'가 20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파죽지세의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망원동의 주택가를 배경으로 하는 '추격자'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보도방 여인들만을 골라 죽이는 무시무시한 연쇄 살인범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여기에 밑바닥 인생을 사는 보도방 여인들의 현실과 범죄에 대응하는 무기력한 경찰의 모습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펼쳐지는 어두운 이면을 담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추격자'가 개봉된 후 밤길 다니기가 두려워졌다는 망원동 일대 주민들의 이야기와 검사의 말 한마디에 우왕좌왕하는 경찰의 입장, 그리고 영화 속에서 '살 필요가 없는 여인들'로 등장하는 보도방 여인들의 실제 목소리를 담아봤다.
●29세 보도방 여인 A씨가 말하는 실태
경기도 수원의 모텔 밀집 지역. 늘씬한 몸매에 예쁜 얼굴을 가진 여성이 방문을 두드렸다. 미리 모텔을 통해 방 호수를 확인한 일명 '출장 마사지' 여성은 스스럼 없이 방에 들어섰다.
음지에서 암암리에 활동하는, 떳떳하지 못한 자신들의 생활을 굳이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그녀를 설득한 지 20분. 일을 시작한지 6개월 됐다는 29살 A씨는 조심스레 영화 '추격자' 속에 담겨진 것보다 더 리얼한 보도방 여인들의 삶을 풀어냈다.
▲"먹고 살기 위해 보도로 나선 애 엄마들도 많아"
영화 '추격자' 속의 김미진(서영희 분)은 딸 아이와 함께 사는 미혼모다.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보도 일을 시작했지만,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에 대해 A씨는 "이 일을 하는 사람 중에 애 엄마도 꽤 많다. 술집에서 일하다가 애가 생긴 탓에 술집에 나갈 수는 없고, 혼자 애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시내 근처 원룸을 얻어서 애랑 같이 살면서 출장을 나간다"고 설명했다.
남편 사업이 부도를 맞은 후 일본으로 원정 보도 일을 가는 엄마들도 다수다. 일본 원정의 경우 한달 최고 5000만원의 돈을 손에 쥘 수 있는 만큼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일본 콜의 경우 사람답지 못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5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5~6명이 함께 기거하고, 집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는 등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행을 택하는 여성들이 많다"고 실태를 전했다.
▲"집으로 출장 나가는 경우는 드물어"
'추격자' 속 범인 지영민은 보도 여인들을 모두 집으로 불렀고, 그곳에서 처참하게 살해했다. 하지만 실제로 보도 여인들의 경우 집으로 출장을 가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다.
A씨는 "원룸이면 모르겠지만, 단독주택은 왠지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에 잘 가지 않는다. 혹시 가게 되면 만일을 위해 밖에서 '삼촌(일 봐주는 남성을 이렇게 칭했다)'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혹시 약이라도 넣었을까 싶어서 음료수도 안 마신다. 또 화장실과 거실, 방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카메라가 있는지를 살펴본다"고 말했다.
A씨는 실제로 집에 갔는데 한 명이 아니라 3명이 기다리고 있었던 경험을 털어놨다. 처음에는 한 명만 만났다고 하고 2명 분을 슬쩍 할까도 생각했지만, 한 사람 손에 카메라가 들려 있어서 그냥 나와버렸다고 고백했다.
▲"실제 폭행을 당하면 신고해 버리겠다"
영화 속에서 지영민은 "살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라도 있으면 말해 봐"라는 차가운 말과 함께 보도 여인들을 차례로 살해했다.
A씨는 "재수 없으면 돈도 뺏기고, 맞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무서울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런 일이 많으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겠냐"고 반문했다.
또 폭행을 당한다면 "그 사람을 신고해 버리겠다"며 무조건 '쉬쉬'하던 예전과는 달라진 생각을 드러냈다. 성 폭행법상 아가씨는 벌금 50만원만 물면 되지만, 손님은 벌금 300만원에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등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는 " '추격자' 속 이야기가 실제 사건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면서도 다소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나는 프리랜서, 편한 면도 있어"
전단지를 보고 전화한 후 커피숍에서 면접을 보는 간단한 절차를 거쳐 일을 시작했다는 A씨는 스스로를 '프리랜서'라고 칭했다. '돈이 급해서 일을 시작했다'는 그는 "술 마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손님과 잠만 자면 된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없고, 가게에 빚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언제든지 그만둘 수도 있다. 주로 PC방이나 친구 집에서 대기하고, 일이 있을 때면 삼촌들이 태우러 오고 해서 편하다. 이 일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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